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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옮겨 심고

예전 이영란 2009. 12. 11. 14:35

퇴계선생속집 제2권

 

 

대를 옮겨 심고 나서 강절(康節) 소옹(邵雍)의 고죽(高竹) 시에 차운하다 8수(八首)


어린 대 두세 포기를 / 穉竹兩三叢
옮겨 심고 자라나는 것 보니 / 移來見其生
우선 그 새싹이 돋는 것이 기쁘거니 / 且喜新萌抽
편행(鞭行)을 놓친들 어떠하리 / 何妨逸鞭行
대나무는 은거하는 사람을 만났고 / 物遇人之幽
사람은 밝은 시대를 만났네 / 人荷時之明
산골 동산의 작은 구역 안에서 / 山園一畝內
다행하게도 서로 정을 나누네 / 幸矣相娛情

어린 대를 앞뜰에 심었더니 / 穉竹種前庭
내 창이 맑고도 그윽하여라 / 我窓淸且幽
긴 여름에는 무성히 자라는 것을 보고 / 猗猗見長夏
맑은 가을에는 늠름한 자태 기약하네 / 凜凜期高秋
들어오면 그대를 마주 보고 / 入而對此君
나가서는 시냇물에 양치질하네 / 出而漱溪流
맑고 차가움 많을수록 좋나니 / 淸寒不厭多
만나는 곳마다 마음껏 받아들이네 / 遇境恣所收

어린 대를 나의 뜰에 심었더니 / 穉竹種我庭
또 그윽한 바위 앞에 있구나 / 亦在幽巖下
거기 또 소나무와 매화 있으매 / 有松倂有梅
세 가지 절개 스스로 흐뭇하여라 / 三節足成詑
기인(畸人)은 때때로 찾아오지만 / 畸人有時來
속인(俗人)이 오는 것이야 어찌 받을쏜가 / 俗駕寧對謝
진실로 이 중에서 늙을 수 있거니 / 誠堪老此間
고기 먹기는 오래 전에 그만두었네 / 肉食久已罷

어린 대 비로소 줄을 이루니 / 穉竹始成行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처럼 그 절조 맑구나 / 已似伯夷淸
온갖 초목 가운데서 빼어났나니 / 挺然衆卉中
스스로 풍교(風敎)를 세울 만하여라 / 自可樹風聲
나라 사양하는 것 한때의 의리요 / 讓國一時義
주나라 곡식 부끄러워한 것은 백세(百世)를 위한 마음일세 / 恥粟百世情
채미곡(採薇曲)을 길게 노래하였다고 / 長歌採薇曲

어느 누가 불평한 마음 드러낸다 하리 / 孰云鳴不平

어린 대는 옮겨서 살리기 어렵나니 / 穉竹移難活
아침저녁 부지런히 물주고 북돋워 주었네 / 日夕勤灌蓋
땅에 뿌리내릴 때는 기뻐하는 듯하더니 / 托地如有欣
꿋꿋이 바로 설 때는 그 모습 의젓하네 / 植立儼相對
말쑥하고 깨끗한 뜻이 / 蕭灑淸眞意
어느새 내 마음 꼭 맞아 드네 / 忽與我心會
덕을 비유해 기욱편(淇澳篇)을 읊나니 / 譬德詠淇澳
시인(詩人)이 참으로 사랑할 줄 알았네 / 詩人眞知愛

어린 대 아름다운 자태 드러내니 / 穉竹有美姿
뾰족한 새순이 죽순 껍질 벗어났네 / 尖新脫綳初
옮겨 심을 때는 취하여 잊었고 / 遷地醉來忘
춤추는 가지 끝은 웃을 때마다 펴지네 / 舞梢笑時舒
맑은 새벽에는 이슬에 함뿍 젖고 / 重露淸晨後
가랑비 개면 서늘한 기운 서리네 / 微涼小雨餘
어찌 구태여 저 봉명관(鳳鳴管)의 / 何須鳳鳴管
길고 짧음을 자세히 분별하리 / 長短算分銖

어린 대 땅을 뚫고 자랄 때는 / 穉竹拔地生
그 마음 구름 위를 찌르려는 듯 / 意欲干雲上
단혈(丹穴)에 사는 저 오색(五色)의 새는 / 丹穴五色禽
울음 울며 어디로 향해 갔나 / 雝雝去何向

초연히 그윽한 곳을 벗하고 사노라니 / 蕭蕭伴幽居
사립문은 나날이 깨끗하게 비네 / 柴門日淸曠
시냇가의 늙은이 제후에 봉해질 상(相)을 / 足明溪上翁
원하지 않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네 / 不願封侯相

어린 대 스스로 숲을 이루니 / 穉竹自成林
시원한 소리 찬 잎에서 생기네 / 爽籟生寒葉
번천(樊川)이 어찌 그대를 알리 / 樊川豈爾知
그대를 갑옷 입은 만 사람에 비유하였네 / 比之萬夫甲

도(道)가 너무 외로울까 하여 / 亦恐道太孤
국화를 심어 주위를 둘렀네 / 栽菊繞成匝
해롭게 하는 것을 제거하기 위해 / 除害不可無
때때로 친히 삽(鍤)을 잡노라 / 時時親操鍤


[주D-001]편행(鞭行) : 음력 5월 13일을 죽취일(竹醉日)이라 하는데, 그날에 대를 옮겨 심으면 무성하게 자란다. 혹 그날에 비가 와서 마치 대를 채찍질하면[鞭行] 다음 해에 죽순이 많이 난다고 한다.《藝苑雌黃》
[주D-002]그대[此君] : 대나무의 별칭이다. 동진(東晉)의 왕휘지(王徽之)가 대나무를 매우 좋아하여 “어찌 하루라도 그대가 없을 수 있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邪]”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
[주D-003]기인(畸人) : 세상과 맞지 않고 예법에 구속되지 않는 탈속한 사람을 말한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기인이란 인간 세상에는 맞지 않으나 하늘과는 짝하는 사람이다.[畸人者 畸於人而侔於天]”라고 하였다.
[주D-004]고기 …… 그만두었네 : 소동파(蘇東坡)의 시에 “차라리 밥 먹을 때에 고기가 없을지언정, 거처하는 데 대가 없을 수는 없다.[可使食無肉 不可使居無竹]”라는 구절에서 의미를 취해온 표현이다.《蘇東坡詩集 卷9 於潛僧綠筠軒》
[주D-005]나라 …… 의리요 : 백이와 숙제는 모두 고죽군(孤竹君)의 아들인데, 고죽군이 셋째 아들인 숙제를 사랑하여 임금 자리를 전하여 주려 하였다. 고죽군이 죽은 뒤에 숙제가 백이이게 사양하니, 백이는 받지 않고 가버리고 숙제도 역시 가버렸다. 그래서 국인들이 가운데 아들을 세웠다.
[주D-006]주나라 …… 노래하였다고 : 백이와 숙제가 주(周)나라 문왕(文王)에게 의탁하여 있다가, 문왕이 죽은 뒤에 문왕의 아들 무왕(武王)이 천자(天子)인 상(商)나라 주(紂)를 치니, 백이와 숙제가 말렸으나 듣지 않으므로, 불의(不義)한 주나라 곡식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채미가(採薇歌)〉를 지어 불렀다.
[주D-007]불평한 마음 드러낸다 : 한유(韓愈)의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 “물(物)이 불평하면 소리를 낸다.[不平則鳴]”라는 말이 있다.
[주D-008]시인(詩人) : 《시경》의 〈위풍(衛風) 기욱(淇澳)〉에서 대나무를 읊어 군자의 덕에 비유하였는데, 시인은 기욱편을 지은 사람을 말한 것이다.
[주D-009]취하여 잊었고 : 대나무를 옮겨 심는 음력 5월 13일을 죽취일(竹醉日)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10]춤추는 …… 펴지네 : 대가 바람을 만나서 몸이 매우 구부러지는 것을 대가 웃는 것[竹笑]이라 한다. 《說文》
[주D-011]봉명관(鳳鳴管) : 황제(黃帝)가 영륜(伶倫)을 시켜 해곡(嶰谷)의 대를 베어 오니, 두 마디 사이의 길이가 여섯 치 아홉 푼이었다. 그것으로 봉(鳳)의 울음을 모방하여 율관(律管)을 만들었다.
[주D-012]단혈(丹穴)에 …… 갔나 : 봉황은 죽실(竹實)을 먹고 산다고 하므로 한 말이다. 단혈은 전설상의 산 이름으로 이곳에 오색영롱한 봉황새가 산다고 한다. 《山海經 南山經 鳳皇》
[주D-013]제후에 봉해질 상(相) : 귀한 신분이 된다는 뜻이다. 한(漢)나라 반초(班超)가 젊었을 때에, 관상을 보는 사람이, “그대는 제비의 턱에 범의 머리라 날아서 고기를 먹을 상이니 바로 만리후에 봉해질 상이다.[燕頷虎頭 飛而食肉 此萬里侯相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4]번천(樊川)이 …… 비유하였네 : 번천은 당나라 시인 두목지(杜牧之)인데, 그가 대를 두고 지은 시에 만부갑(萬夫甲)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진(晉)나라 좌사(左思)의 오도부(吳都賦)에 “대숲은 10만 장부(丈夫)가 갑옷 입고 칼을 쥐고 선 것이다.”라고 하는 구절이 있으니, 두목지는 그것을 인용한 것일 뿐이다.
 
봄날 계상(溪上)에서

눈은 녹고 얼음 풀려 푸른 물 흐르는데 / 雪消氷泮淥生溪
살랑살랑 실바람에 버들가지 휘날린다 / 淡淡和風颺柳堤
병중에 와서 보니 그윽한 흥 넉넉한데 / 病起來看幽興足
꽃다운 풀 싹트는 것 더욱더 어여뻐라 / 更憐芳草欲抽荑
 퇴계선생문집 제3권
 시(詩)
성산(星山) 이자발(李子發)의 호는 휴수(休叟)인데, 신원량(申元亮)의 열 그루 대[竹] 그림에 화제(畫題)를 청하다 10절(十絶)


눈과 달 속의 대

차디찬 옥가루 무더기로 누르고 / 玉屑寒堆壓
얼음의 수레바퀴 멀리서 비친다 / 氷輪迥映徹
여기서 알겠노라 굳건한 그 절개를 / 從知苦節堅
더욱이 깨닫노라 깨끗한 그 빈 마음 / 轉覺虛心潔

바람에 흔들리는 대

실바람 불어오면 빙그레 미소 짓고 / 風微成莞笑
된바람 불어오면 불평해 우는구나 / 風緊不平鳴
영륜이 캐는 것 만나지 못하고는 / 未遇伶倫采
속절없이 머금었네 크나큰 노랫소리 / 空含大樂聲

이슬 맞은 대

새벽에 일어나 긴 대를 바라보니 / 晨興看脩竹
서늘한 이슬이 쏟아진 듯 흥건하네 / 涼露浩如瀉
맑디맑은 운치 숲이 모두 비었는데 / 淸致一林虛
풍류가 넘쳐나네 숙여지는 댓가지들 / 風流衆枝亞

빗속의 대

창문 앞에 서 있는 한 떨기 대나무 / 窓前有叢筠
바스락바스락 찬비에 우는구나 / 淅瀝鳴寒雨
마치도 시름겨운 초나라 손이 / 怳然楚客愁
소상강 포구로 들어가는 듯하여라 / 如入瀟湘浦

돋아나는 죽순

바람 우레 일더니 여기저기 순이 돋아 / 風雷亂抽筍
호랑이가 웅크리고 용이 날치는 듯 / 虎攫雜龍騰
문 닫고도 죽순이 대 되는 것 보나니 / 門掩看成竹
나는 지금 소릉(少陵)을 배운다네 / 吾今學少陵

어린 대

천 가닥 뿔이 겨우 소처럼 돋더니만 / 千角纔牛沒
어느 새 열 길이나 칼처럼 뽑아졌네 / 十尋俄劍拔
비로소 비와 이슬 자태를 지니다가 / 方持雨露姿
바람서리 굳은 절개 벌써 나타나는구나 / 已見風霜節

늙은 대

늙은 대줄기에 어린 가지 생겨나니 / 老竹有孫枝
소소하고 또 그윽하고도 맑구나 / 蕭蕭還閟淸
푸른 이끼 부서지는 것 무엇이 상관이랴 / 何妨綠苔破
마음껏 서늘한 기운 불어 내나니 / 滿意涼吹生

마른 대

가지와 잎사귀는 반쯤 이미 말랐으나 / 枝葉半成枯
기운과 절개는 전혀 죽지 않았네 / 氣節全不死
고량진미 차려 먹는 사람에게 말하노니 / 寄語膏粱兒
초췌한 선비라고 가볍게 보지 마오 / 無輕憔悴士

꺾여진 대

굳센 목은 어쩌다가 꺾이게 되었지만 / 强項誤遭挫
곧은 그 마음이야 깨어질 바 아니로다 / 貞心非所破
꼿꼿이 서 있어서 흔들리지 않으니 / 凜然立不撓
쓰러지고 나약한 자 격려할 만하도다 / 猶堪激頹懦

외로운 대

양로 잘함 들었으니 어찌 아니 돌아가랴 / 聞善盍歸來
폭력으로 폭력 바꾸니 어디로 갈 것인가 / 易暴將安適
이로부터 더욱더 외롭게 되리니 / 從此更成孤
곡식이 있어도 내 먹을 것 아니어라 / 有粟非吾食


[주C-001]신원량(申元亮) : 신잠(申潛)으로, 자가 원량(元亮)이다. 대[竹]를 잘 그리기로 유명하였는데, 퇴계의 친한 벗이었다.
[주D-001]영륜(伶倫)이 캐는 것 : 황제(黃帝) 때에 음악가 영륜이 곤산(崑山)의 대를 캐어서 율관(律管)을 만들었다.
[주D-002]소상강(瀟湘江) …… 듯하여라 : 소상강 언덕의 대숲이 유명하다.
[주D-003]호랑이가 …… 듯 : 대 뿌리에서 죽순이 나는 것이 마치 호랑이가 웅크리고 용이 날치는 것 같다는 말이다.
[주D-004]소릉(少陵) : 두보(杜甫)인데, 그의 시에, “먼젓번에 난 죽순이 대나무가 된 것을 본다.” 하였다.
[주D-005]양로(養老) …… 돌아가랴 :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주 문왕(周文王)이 양로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내가 듣건대 서백(西伯)이 양로를 잘한다니, 왜 그리 돌아가지 않으랴.” 하고 주나라로 갔다.
[주D-006]폭력으로 폭력 바꾸니 : 주 문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치려 하자, 백이와 숙제가 말리다가 되지 않으니, 서산(西山)에 숨어서 노래를 짓기를, “폭력으로 폭력을 바꾼다.” 하였다.
 
홀로 능운대(凌雲臺)를 찾아 2절(二絶)

수풀 뚫고 골에 들어 내와 노을 찾노라니 / 穿林入谷訪烟霞
곳곳에 들국화가 향기를 뿜어대네 / 處處吹香野菊花
갑자기 붉은 벼랑 푸른 물에 다다르니 / 忽見丹崖臨碧水
퍽이나 어여뻐라 집 옮겨 살아야겠네 / 愛深從此欲移家

밑에는 붉은 벼랑 뒤에는 높은 대 / 下有丹崖上有臺
하얀 구름 뭉게뭉게 푸른 산을 둘러쌌네 / 靑山環遶白雲堆
한 마리 학을 짝한 푸른 수염 늙은이 / 只應伴鶴蒼髯叟
나 홀로 읊조리며 올라옴을 보고 있네 / 見我吟詩獨上來

[주D-001]푸른 수염 늙은이 : 소나무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