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사/한국서예사

천자문의 한국化 ‘한석봉 천자문’

예전 이영란 2008. 1. 3. 16:14

[서예가 열전]천자문의 한국化 ‘한석봉 천자문’

전통적으로 한자 교재는 ‘삼백천(三百千)’, 즉 ‘삼자경(三字經)’ ‘백가성(百家姓)’ ‘천자문(千字文)’이 있다. 이 중 주흥사(470?~521)의 ‘천자문’이 가장 유명하다. 천자문은 ‘天地玄黃(천지현황)’에서 시작하여 ‘焉哉乎也(언재호야)’로 끝나는 1,000자 250구 125절의 방대한 4언고체 서사시다. 여기에는 동아시아 문사철의 주요 테마인 역사·천문·지리·인물은 물론 윤리·도덕·처세 등의 덕목들이 망라되어 있다. 따라서 천자문은 어린이의 문자 습득을 위한 교재, 수신을 위한 윤리 교재, 역사·철학 교재 등 종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천자문’의 한반도 전래 시기는 삼국시대로 추측된다. 백제시대에 ‘천자문’ 1권과 ‘논어’ 10권을 일본에 전했다는 ‘고사기’ 기록이 이를 입증한다. 현존자료로 볼 때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수나라 지영선사와 원나라 조맹부가 쓴 ‘진초천자문’, 당나라 회소가 쓴 ‘초천자문’이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왕실은 물론 사대부나 민간에 이르기까지 초학자는 모두 ‘천자문’을 학습하였다.

조선시대 ‘천자문’ 필적을 남긴 문인으로는 이용·박팽년·이황·김인후·한호·신위·이삼만·조윤형·정약용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가장 널리 보급된 천자문은 석봉 한호가 선조의 어명으로 1583년(선조 16년)에 쓴 소위 ‘한석봉천자문’이다. 이 책은 해서와 대자서, 초서 등 세 종류가 있는데 1601년 처음 간행된 이후 1650년, 1691년, 1814년 등 여러번 중간되었다. 1800년대 이후에는 방각본까지 출간되면서 조선 글씨의 기준으로 학습되었다.

간인본은 중앙관서본·지방관서본·사찰본·사가본·방각본 등으로 구분되는데, 인쇄문화 발달은 물론 국어 변천역사를 밝히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특히 우리나라 ‘천자문’은 한자와 함께 우리말 새김과 자음이 실려 있어 한글 교육도 동시에 수행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기준이 된 것이 바로 1583년 ‘한석봉천자문’이다. 이 책은 원간본이 나온 후 중앙과 지방에서 번각되면서 한글석음의 시대별 차이는 물론 지역 방언까지도 나타나고 있어 한글변천 과정도 알 수 있게 한다.

한편 ‘천자문’은 조선시대에 가장 널리 학습되면서 중국과 다른 조선의 주체적인 시각과 비판적 해석이 반영되어 다양한 형태로 변용되어 만들어졌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들면 ‘아학편(兒學編)’ ‘동사천자(東史千字)’ ‘종문천자(宗門千字)’ ‘역사천자(歷史千字)’ ‘류합(類合)’ ‘대동천자문(大東千字文)’ ‘삼천자(三千字)’ 등이 있다. 요컨대 천자문 한 권을 통해 한자와 한글 학습은 물론 인쇄문화와 서예, 한자의 구성원리, 한글 변천 과정, 전통교육제도, 일제시대 민족교육, 천자문의 조선화 과정까지도 알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