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사 십이수(田家詞十二首)
속동문선 제5권
전가사 십이수(田家詞十二首)
성현(成俔)
정월
봄님이 고삐를 놓아 중천에 훨훨 나니 / 靑陽縱靶翔寥廓
연못 물이 늠실늠실 얼음 쩍쩍 갈라지네 / 塘水溶溶氷拍拍
따스한 바람이 버들에 불어 줄줄이 누른빛 / 和風吹柳萬條黃
채장으로 소를 몰아 농사 시작 알리누나 / 彩杖驅牛啓東作
따뜻한 양기가 여뀌 싹을 길러 내고 / 溫陽滋養紅蓼芽
눈 온 뒤에 냉이 잎이 언덕에 깔리었네 / 雪後薺葉敷晴坡
온 동네가 배반을 차려 놓고 대보름날 저녁에 모여 / 四隣杯盤聚元夕
동산에 달 맞이하자 서로 찾아다니네 / 東山見月相經過
달이야 무심코 떠올라 비치지만 / 輪魄無心自來照
노인들은 해마다 풍년을 점치네 / 老叟年年占豐兆
2월
거여목은 솟고 쑥은 아직 삐죽한데 / 苜蓿迸地蔞蒿短
닫힌 문을 열려니 날씨가 따뜻하구나 / 蟄戶欲開天氣暖
읍의 창고에서 봄 장리 곡식 안 내 주니 / 邑中高廩省春糶
집집이 달리는 좁쌀 하소연할 곳이 없네 / 萬口疏糲無處悹
금년 봄에 보리는 때를 잃지 말자 / 今春來牟當及時
심으려니 종자 없고 갈려니 농자 없네 / 欲種無種耕無資
구름 사이 아침 해가 밭 이랑을 비추니 / 雲間朝日射芳甸
옥비늘 번쩍번쩍 쇠 보습이 번뜩이네 / 玉鱗閃閃翻金犂
봄님이 차차 소식을 전해 오니 / 東君次第傳消息
느티나무 꽃이 황금빛을 발하누나 / 阿槐花發黃金色
3월
뻐꾹새 슬피 울고 새ㆍ제비는 춤추는데 / 杜宇哀吟新燕舞
백 자 아지랑이가 높은 나무에 걸렸구나 / 百尺游絲罥高樹
스물네 번 불어 오는 동화 바람 / 二十四番棟花風
한 차례, 두 차례, 내리는 부슬비 / 一陣兩陣楡莢雨
날씨가 좋을 때에 농사 한창 바쁘니 / 風日美時農正忙
술 싣고 봄 언덕을 찾는 사람이 없네 / 無人載酒尋春䲧
이서들이 부산하게 외는 황폐한 마을 / 里胥雜還呼荒村
살구꽃 벌써 한창, 창포 잎도 퍼졌네 / 杏花菖葉今彌繁
농사가 분주하고 사람들 모두 들에 나가 / 村務紛紛人四出
손에 손에 가래ㆍ보습 떼구름같이 모였네 / 萬指畚鍤如雲屯
4월
온갖 꽃이 다 지고 봄 일이 끝나니 / 百花飛盡春事畢
날씨가 청명한데 꾀꼬리는 꾀꼴꾀꼴 / 天氣淸和鶯語滑
새끼 꿩은 연못 부들을 굴혈로 삼고 / 乳雉窟穴澤中蒲
촌민들은 산 위의 고사리를 캐러 가네 / 野人活計山上蕨
자는 누에 발에 가득, 닭의 염통 구우니 / 眠蠶滿箔燒鷄心
밭 두렁에 어둑어둑 뽕나무가 늘어섰네 / 十畝陰陰桑柘密
밭이 쩍쩍 갈라져 마름이 덩어리로 붙었기에 / 田龜半坼萍黏塊
가서 샘 줄 엿보고 물방아를 끌어오네 / 往覘泉脈牽龍骨
누에엔 가물어야 하고 농사엔 비 와야 하니 / 蠶欲久晴農欲雨
하늘도 딱하렷다, 어느 편을 도울꼬 / 主宰茫茫竟何寓
5월
때는 한창 여름이라, 만물이 무성하고 / 節中南訛萬彙盛
느름ㆍ버들 촌락에 해가 처음 길어지네 / 楡柳村墟日初永
뒷마을 석류꽃은 울타리를 비추고 / 北里榴花映短籬
앞집 어린 대는 오솔길에 그늘졌네 / 南隣稚竹蔭歸徑
언덕의 녹음 물결이 누런빛을 띠는데 / 平丘綠浪着暗黃
집집 절구에선 맛난 떡을 찧는 소리 / 杵臼紛紛芳餌餠
단옷날 무렵에는 여기저기 그네 뛰기 / 鞦韆門巷過端午
모시 적삼 펄렁펄렁 모였다가 흩어지네 / 苧葉翻翻散還聚
논에 논에 볏모는 구름처럼 푸른데 / 萬畝秧針翠撥雲
비둘기는 비를 불러 “구구구” 울음 우네 / 鳩婦喚雨聲正苦
6월
뜨거운 낮의 햇빛이 구슬도 녹일 듯 / 日輪當午萬珠融
논뙈기 벼를 매며 늙은이가 고생하네 / 鋤禾百畝愁老翁
밭 머리서 부르는 노래를 밭 끝에서 답하며 / 田頭放歌田尾和
저쪽 김 다 매고 이쪽으로 오는구나 / 西耘已了復徂東
점심 먹고 돌베개로 밭두렁에 누우니 / 饁罷支甎臥草隴
어둑어둑한 나무 그늘에 훈풍도 많것다 / 陰陰樹榭多薰風
훈풍이 불어서 산 머리의 비가 되니 / 薰風吹作山頭雨
흰 물결 출렁출렁 흙이 안 보이네 / 白浪粼粼不見土
돌아오며 부들 갓에 소를 거꾸로 타니 / 歸來蒻笠牛倒騎
갈 피리 한 소리에 날이 저물려 하네 / 蘆管一聲天欲暮
7월
장마비 걷자 더위는 가셔지고 / 積雨初收失炎暑
우는 쓰르라미가 가을 소식을 전하누나 / 鳴蜩又作涼秋語
동편 울타리에 벽옥 같은 참외를 쪼개고 / 東籬碧玉割甘瓜
작은 독엔 신곡으로 맑은 술을 빚어 놨네 / 小甕淸香釀新黍
이웃끼리 술 차려 놓고 앞길로 오락가락 / 比隣樽酒通前蹊
취해 “어어” 노래하며 다투어 부축하네 / 醉歌嗚嗚爭扶携
농가의 절반 일을 이미 다 마쳤으니 / 旣辦農家一半事
호미 끝에 묻은 흙을 말끔히 씻어 내자 / 洗盡鋤頭三寸泥
만나서 지껄이는 동안 저녁이 어느덧 어두워오는데 / 相逢不識山氣昏
이슬이 가을 벼 이삭에 내리려 하는구나 / 露華欲上秋禾痕
8월
흰 이슬이 소리 없이 풀을 시들리는데 / 白露無聲悴芳草
동리엔 집집이 붉은 대추를 따네 / 園巷人人剝丹棗
제비도 깃을 떠나고 기러기는 오고 / 社燕辭巢雁傳信
만물이 처량하여 가을빛이 짙었네 / 凄涼萬物秋容老
온갖 벼들이 푸르락누르락 / 稻華䆉稏交靑黃
들빛이 차차 붉은 구름 빛으로 변해 가네 / 野色漸變彤雲光
떼 머리에 은붕어는 지느러미를 놀리고 / 槎頭銀鯽始振鬐
갈 밑의 자줏빛 게는 알을 갓 배었네 / 葦底紫蠏初輸芒
몸이 한가한데 먹을 것 있고, 별미도 있으니 / 身閑有食食兼味
늙은이ㆍ젊은이들이 태평성세를 노래하네 / 大平耋艾歌虞唐
9월
무잎이 돋아나고 토란 알이 살쪘는데 / 蕪菁嫰葉芋魁肥
서리 찬 농가에 옷을 처음 장만하네 / 霜重田家初授衣
참새들이 펄펄 늦가을 땅을 쪼니 / 黃雀翩翩啄晩地
농작물 베려 할 땐 날씨가 음침하네 / 農欲刈時天少暉
낫을 허리에 차고 달구지를 밀어 언덕으로 올라가서 / 腰鎌扶轂上荒阪
이 언덕선 벼를 베고 저 집에선 돌아가네 / 東皐載稻西家歸
국화가 꽃을 피워 초가집을 두르니 / 紫菊開花繞茅舍
노랫소리ㆍ북소리가 들판에서 떠들썩 / 歌鼓紛紛喧四野
청주 한 말과 닭 한 마리로 / 一斗白酒一隻鷄
함께들 신림에 가서 가을 고사 드리네 / 共向神林賽秋社
10월
좋은 달(10월)이 찼으니 천지가 숙연하고 / 良月就盈天地肅
백곡이 수확되어 집채처럼 쌓였네 / 萬稼登場高似屋
추운 밤 이집 저집 옷 다듬는 소리 / 夜寒碓杵隱晴雷
시루엔 설기떡이 무럭무럭 김을 내네 / 香粳浮浮炊白玉
부자는 세가 적어 곳간이 풍부해도 / 富者少稅豐囷倉
빈자는 세를 물기도 오히려 부족하네 / 貧者輸租反不足
빈가ㆍ부가의 시름과 기쁨이 / 貧家富家愁與歡
다만 구구한 한 치 배에 있네 / 只在區區一寸腹
애써 호구하려 생계가 분주한데 / 黽勉餬口生理忙
또 솜을 내놓고 옷 마련을 해야 하누나 / 又披雪絮妝衣裳
11월
해가 짧은 동짓달에 별은 묘성 / 日短南至星正昴
천지에 회오리바람이 밤을 뒤흔드네 / 萬竅剛飆夜相攪
납전의 서설이 이미 세 번 하얗고 / 臘前瑞雪已三白
열흘째나 흥건히 보리를 적시었네 / 渗漉連旬滋宿麥
토방에 삭정 불이 훈훈히 따스한데 / 融融土榻榾柮溫
석양 건너 산 밑에 뭇 꿩들이 날치네 / 山下斜陽戲群翟
가마 속에 삶는 콩이 유락처럼 물씬한데 / 釜中煮豆軟如酥
찬 수풀, 추녀 끝에 연기가 외로워라 / 寒林屋角煙光孤
소를 구유로 몰아 콩깍지를 써노라니 / 驅牛登櫪莝菽萁
문 밖에 아전이 와서 세를 내라 하는구나 / 門外使者來索租
12월
삭운이 들에 가득, 으스스 음침한데 / 朔雲擁野陰凌兢
남산ㆍ북산에 모두 다 얼음 투성이 / 南山北山皆明水
구들에 모인 사람들 자라처럼 움츠리고 / 人寒聚隩縮如鱉
깊은 숲, 눈길에 장작 온돌 그립구나 / 林深雪逕愁薪蒸
늙은인 문권 보고 할멈은 길쌈 감독 / 翁閱契券婦課績
종이 창에 가물가물 피마자 등불 / 紙窓翳翳篝明燈
매란 놈이 토끼를 덮쳐 섣달 만난 것 좋아라고 / 磔禽摶兔逢嘉臘
납향 고사에 술과 제생 마련됐네 / 蜡祭壇中牲酒合
새해를 맞으며 다시 작년 같을까봐 / 迎新却恐踵前途
구룡(땅과 농사를 맡은 신)에게 하소연하여 좋은 회답을 기다리네 / 仰訴句龍待休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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