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열전]‘편액(扁額)’ 설암체 바탕 석봉이 재창조
‘이마에 걸린 넓적한 판’의 뜻을 지닌 편액(扁額)은 현판의 한 종류다. 현판에는 ‘광화문’처럼 건물이나 대문 이름을 쓴 편액이 있는가 하면, 건물을 세운 의의와 경과를 적은 상량문이나 감상 목적의 주련이 있다. 이밖에도 제명기·게시문·좌목 등이 있다.
현판의 종류 또한 궁(宮) 궐(闕) 전(殿) 각(閣) 합(閤) 당(堂) 방(房)이나 이에 딸린 문(門) 등 건물의 성격·종류·위치 등에 따라 다양하다.
현존 자료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 편액은 고려말 공민왕 필적으로 전해지는 ‘安東雄府(안동웅부)’ ‘映湖樓(영호루)’다. 그리고 궁중 편액으로 필자가 알려진 대표적인 것은 조선초 양령대군이 쓴 ‘崇禮門(숭례문)’, 성임의 필적인 창경궁의 ‘弘化門(홍화문)’, 중기 이황이 쓴 ‘興仁之門(흥인지문)’이나 조희일의 ‘敦義門(돈의문)’, 이신이 쓴 경희궁의 ‘興化門(흥화문)’ 등 서울의 4대문과 5대궁 정문의 필적이 있다.
이들 궁중편액의 조형적 특징을 보면 조선 초기·중기는 물론 후기·말기에까지 굵은 획과 빈틈없는 짜임새 면에서 편액글씨의 일관된 공통점이 포착된다. 이러한 대자해서, 즉 편액글씨의 특징은 여백의 공간이 필획보다 큰 소자나 중자 글씨와는 반대되는 현상이다.
편액글씨의 서체 연원은 고려말에 전해진 원나라 승려 설암의 ‘춘종첩(春種帖)’ ‘병위삼첩(兵衛森帖)’ ‘동명(東銘)’ 등의 글씨와 관계가 깊다. 그 이유는 설암체가 조선초기부터 당시 송설체나 왕희지체와 더불어 대자(大字) 글씨 공부의 모범으로 왕실에서 널리 인출하여 종친과 육조, 집현전 관리들에게 하사품으로 내려졌기 때문이다.
석봉의 ‘대자천자문’은 바로 이러한 토대에서 설암체의 신수를 그대로 체득하여 조선화시킨 것인데, 안진경과 황산곡 필법이 설암체의 모태가 되면서 세로로 긴 자형에다 규각(圭角)과 파임이 강조된 점획의 골격이 된 것이다.
〈이동국/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학예사〉
현판의 종류 또한 궁(宮) 궐(闕) 전(殿) 각(閣) 합(閤) 당(堂) 방(房)이나 이에 딸린 문(門) 등 건물의 성격·종류·위치 등에 따라 다양하다.
현존 자료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 편액은 고려말 공민왕 필적으로 전해지는 ‘安東雄府(안동웅부)’ ‘映湖樓(영호루)’다. 그리고 궁중 편액으로 필자가 알려진 대표적인 것은 조선초 양령대군이 쓴 ‘崇禮門(숭례문)’, 성임의 필적인 창경궁의 ‘弘化門(홍화문)’, 중기 이황이 쓴 ‘興仁之門(흥인지문)’이나 조희일의 ‘敦義門(돈의문)’, 이신이 쓴 경희궁의 ‘興化門(흥화문)’ 등 서울의 4대문과 5대궁 정문의 필적이 있다.
이들 궁중편액의 조형적 특징을 보면 조선 초기·중기는 물론 후기·말기에까지 굵은 획과 빈틈없는 짜임새 면에서 편액글씨의 일관된 공통점이 포착된다. 이러한 대자해서, 즉 편액글씨의 특징은 여백의 공간이 필획보다 큰 소자나 중자 글씨와는 반대되는 현상이다.
편액글씨의 서체 연원은 고려말에 전해진 원나라 승려 설암의 ‘춘종첩(春種帖)’ ‘병위삼첩(兵衛森帖)’ ‘동명(東銘)’ 등의 글씨와 관계가 깊다. 그 이유는 설암체가 조선초기부터 당시 송설체나 왕희지체와 더불어 대자(大字) 글씨 공부의 모범으로 왕실에서 널리 인출하여 종친과 육조, 집현전 관리들에게 하사품으로 내려졌기 때문이다.
석봉의 ‘대자천자문’은 바로 이러한 토대에서 설암체의 신수를 그대로 체득하여 조선화시킨 것인데, 안진경과 황산곡 필법이 설암체의 모태가 되면서 세로로 긴 자형에다 규각(圭角)과 파임이 강조된 점획의 골격이 된 것이다.
〈이동국/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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