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가사

훈민가

예전 이영란 2008. 12. 28. 15:57

훈민가(訓民歌)

- 정철 (16수)

1) 부의모자(父義母慈)

아바님 날 낳으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 / 아버님께서는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께서는 나를 기르시니

두 분 곳 아니면 이 몸이 살아시랴 / 이 두 분이 아니시라면 어찌 이몸이 살 수 있겠는가.

하날 같은 은덕을 어디다혀 갚사올고 / 하늘과 같이 한없는 크나큰 은혜와 덕택을 어디다가 갚으리.

2) 군신유의(君臣有義)

님금과 백성과 사이 하늘과 따히로되 / 임금님과 백성들과의 사이란 하늘과 땅같이 다르지만,

내의 설은 일을 다 알오려 하시거든 / 임금께서는 우리의 서러운 일을 다 아시려고 하거늘,

우린들 살진 미나리를 혼자 어찌 먹으리 / 우리 백성들인들 살찐 미나리를 어찌 혼자 먹을 수 있겠는가.

3) 형우제공(兄友弟恭 : 형은 아우를 우애하고 아우는 형을 공경함 )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 보와 /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보아라.

뉘손대 타나관대 양재조차 같으슨다 / 누구 손에 태어났길래 모양조차 같은가.

한졋 먹고 길러나이셔 닷마음을 먹디 마라 / 한젖을 먹고 자라났으니 다른 마음 먹지 마라.

* 뉘손대:누구한테서.

* 타나관대:태어났기에.

* 양재조차:생김새조차.

* 닷마음:다른 마음.

4) 자효(子孝)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 효도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아 엇지하리 / 돌아가신 뒤에는 아무리 애통해해도 어찌하겠는가.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 한평생 다시 할 수 없는 일은 부모를 섬기는 일뿐인가 하노 라.

5) 부부유은(夫婦有恩)

한 몸 둘에 난화 부부를 삼기실샤 / 한몸을 둘로 나누어 부부를 만드셨으니

이신 제 함께 늙고 죽으면 한 데 간다 / 살아 있을 때는 같이 늙고, 죽으면 저세상의 한곳으로 간다.

어디서 망녕읫 것이 눈 흘기려 하나뇨 / (이런 사이인데) 어디서 망령된 것이 눈 흘기려 하느냐.

* 난화 : 나누어.

* 삼기실샤 : 생기게 하셔서.

* 이신 제 : 살아 있을 때

* 망녕읫 것 : 망령된 것, 자기 부인을 가리킨 듯

6) 남녀유별(男女有別)

간나희 가는 길흘 사나희 에도듯이, / 아녀자가 가는 길을 남자가 비겨서 가듯이

사나희 녜는 길흘 계집이 치도듯이, / 사나이가 가는 길을 여자가 치돌아 가듯이

제 남진 제 계집 하니어든 일홈 묻디 마오려 / 제 남편 제 아내 아니면 이름을 묻지 말구려.

* 간나희 : 계집아이.

* 사나희 : 사나이

* 에도듯이 : 에워(둘러) 돌아가듯이.

* 녜는 : 다니는.

* 치도듯이 : 비껴 돌듯이.

* 남진 : 남편.

* 마오려 : 마십시오

7) 자제유학(子弟有學)

네 아들 효경(孝經) 읽더니 어도록 배홧느니 / 너의 아들 효경을 읽더니 얼마나 배웠는가.

내 아들 소학은 모래면 마츨로다 / 우리 아들 배우던 소학은 모레면 마칠 것이로다.

어느 제 이 두 글 배화 어질거든 보려뇨. / 언제 이 두글을 배워서 어진 사람이 되는 것을 보겠는가.

* 효경 : 공자가 증자에게 효도에 관해 말한 책.

* 어도록 : 얼마큼.

* 모래면 : 모레면

* 마츨로다 : 마칠 것이로다

* 어느 제 : 언제.

* 어질거든 : 지혜롭게 되는 것을

8) 향려유례(鄕閭有禮 : 마을에 예의가 있어야 함 )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스라 /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을 하자꾸나.

사람이 되어나서 옳지옷 못하면 / 사람으로 태어나서 옳지 못하면

마소를 갓 곳갈 싀워 밥 먹이나 다르랴 / 말과 소에게 갓 고깔을 씌워 밥을 먹이는 것과 다르랴.

* 하자스라 : 하자꾸나

* 옳지옷 : '옷'은 강조사

* 갓 곳갈 : 갓과 고깔

* 밥먹이 : 밥 먹이기와

9) 장유유서(長幼有序)

팔목 쥐시거든 두 손으로 받치리라 / (어른이 일어나실 때) 팔목을 쥐시면 두 솟으로 받쳐 드리리라

나갈 데 겨시거든 막대 들고 좇으리라 / 나갈 데가 있으시면 막대 들고 좇으리라.

향음주(鄕飮酒) 다 파한 후에 뫼셔 가려 하노라 / 향음주례(鄕飮酒禮)가 다 끝난 뒤에 모시고 돌아오려 하노라.

* 막대 : 지팡이

* 향음주 : 마을 유생들이 모여 향약을 읽고 술을 마시며 잔치하는 예식.

10) 붕우유신(朋友有信)

남으로 삼긴 중에 벗같이 유신(有信)하랴 / 남으로 생긴 이 중에 벗과 같이 믿음이 있는 이가 있으랴.

내의 왼일을 다 닐오려 하노매라 / 나의 그릇된 일을 다 일러서 충고하려 하는구나.

이 몸이 벗님곳 아니면 사람됨이 쉬울가 / 이몸이 벗이 없다면 올바른 사람 되기가 쉬울까.

* 삼긴 중에 : 태어난 사람 중에

* 내의 : 나의

* 왼일 : 그른 일.

* 닐오려 : 말하려

* 벗님곳 : '곳'은 강조사

11) 빈궁우환 친척상구(貧窮憂患 親戚相救 : 빈궁하고 우환이 있으면 친척이 서로 보살펴줌 )

어와 저 조카야 밥 없이 어찌 할고 / 아! 저 조카야, 밥 없이 어찌할꼬.

어와 저 아자바 옷 없이 어찌 할고 / 아! 저 아저씨여, 옷 없이 어찌할꼬.

머흔 일 다 닐러사라 돌보고저 하노라 / 궂은일 다 말하려무나 서로 돌보아주고자 하노라.

* 아자바 : 아재비(아저씨)

* 머흔 : 험한, 궂은

* 닐러사라 : 말하려무나

12) 혼인사상 인리상조(婚姻死喪 隣里相助 : 혼인이나 상사에는 이웃이 서로 도와야 함 )

네 집 상사들흔 어드록 찰호슨다 / 네 집의 상사와 같은 일들은 어떻게 차려서 지내는가.

네 딸 서방은 언제나 마치느슨다 / 네 딸의 서방은 언제나 맞추어 주려는가.

내게도 없다커니와 돌보고져 하노라 / 내게도 없기는 하지만 돌보아주고자 하노라.

* 상사 : 장례

* 어드록 : 얼마큼

* 찰호슨다 : 차리는가

* 마치느슨다 : 얻게 하느냐

* 없다커니와 : 없지마는

13) 무타농상(無惰農桑 : 농사와 잠업에 게으르지 않음 )

오늘도 다 새거다 호미 메고 가쟈스라 / 오늘도 날이 다 샜다. 호미 메고 김매러 가자꾸나.

내 논 다 매여든 네 논 졈 매여 주마 / 내 논 다 매고 나면 네 논도 좀 매어 주마.

올 길에 뽕 따다가 누에 먹여 보자스라 / 오는 길에 뽕 따다가 누네도 먹여 보자꾸나.

* 새거다 : 새었다

* 매여든 : 매거든

* 점 : 좀

14) 무작도적(無作盜賊 : 도적질을 하지 않음 )

비록 못 입어도 남의 옷을 앗디 마라 / 비록 못 입어도 남의 옷을 빼앗지 마라.

비록 못 먹어도 남의 밥을 비지 마라 / 비록 못 먹어도 남의 밥을 빌어먹지 마라.

한적곳 때 실은 휘면 고쳐 씻기 어려우니 / 한 번만이라도 때를 묻히고 나면 다시 씻기 어려우리라.

* 앗디 : 빼앗지

* 비지 : 구걸하지

* 한적곳 때 실은 휘면 : 한 번만 때가 묻은 후면

15) 무학도박, 무호쟁송(無學賭博.無好爭訟 : 노름을 배우지 말고 송사를 즐기지 않음 )

상륙(象陸) 장긔 하지 마라 송사 글월 하지 마라 / 쌍륙이나 장기 따위를 하지 마라. 송사 글을 써 올리 지 마라.

집 배야 무슴 하며 남의 원수 될 줄 어찌 / 집을 망하게 하여 무엇하며, 남의 원수가 될 줄을 왜 모르나.

나라히 법을 세우샤 죄 있는 줄 모르난다 / 나라가 법을 세워서 죄를 다스리는 줄 모르느냐?

* 상륙:도박의 일종.

* 송사 글월:고소문.

* 배야:망치어.

16) 반백자불부대(斑白者不負戴 : 노인이 도로에서 짐을지지 않게 함 )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 머리에 이고 등에 진 저 늙은이여 그 짐을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저멋거니 돌이라 무거울가 / 나는 젊었으니 돌이라도 무거울까.

늙기도 설웨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가 / 늙은 것도 서럽다고 하겠거늘 무거운 짐조차 지실까.

* 이고진 : 머리에 이고 등에 진

* 저멋거니 : 젊었으니

* 설웨라커든 : 서럽다고 하겠거늘

* 짐을조차 : 짐조차

국어국문학과 이정인

1. 훈민가 작품개관

조선 중기의 문신 정철(鄭澈)이 지은 연시조로서 강원도 관찰사로 일했던 1580년(선조 13) 정월부터 다음해 3월 사이에 백성을 교화할 목적으로 지었다. 훈민은 조선왕조가 들어선 이래 계속 강조되어온 것으로, 송순․주세붕에 의해 지어진 바 있는 훈민시조가 정철에게로 이어진 것이다. 정철의 <훈민가>가 내세우는 덕목은 전과 같았으나 정감 있고 순탄한 말로 인정과 세태를 생동감 있게 그려낸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이 노래는 유교적인 윤리관에 따라 생활할 것을 권했으나, 민요의 사설과 같은 표현방법을 써서 지나치게 의도에 매여 있지 않은 느낌이다. 원래 18수를 지었는데 지금은 16수가 《송강가사松江歌辭》에 실려 전한다. 1656년(효종7) 이후원이 《경민편언해警民編諺解》를 간행할 때 이 작품을 부록으로 실음으로써 널리 유포되었다.

2. 정철의 생애

정철 鄭澈 1536(중종 31)~1593(선조 26) 경기 강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국문학사에서 윤선로 ․ 박인로와 함께 3대 시인으로 꼽힌다. 선조가 즉위하면서 그동안 향촌에서 세력 기반을 다져 오던 사림 세력이 대거 중앙 정계로 진출하여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림 세력은 왕실 외척인 척신 정치의 잔재 청산을 두고 갈등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척신 정치 청산에 소극적인 기성 사림으로 이루어진 서인과 새로이 정계에 등장한 신진 사림인 동인으로 나뉘게 되었다. 정철은 서인의 편에 가담하다 분쟁에 휘말려 여러 차례 고향으로 내려가 있다가 1580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강원도에 1년 동안 머무르면서 <관동별곡>과 시조 16수를 지었다. 그 이후에도 그는 전라도 관찰사, 도승지, 예조참판에 이어 함경도관찰사, 예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의 직책을 거쳤으나 그 와중에도 수없이 많은 공론에 휩싸여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유배생활을 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정에서 석방논의를 해 5월에 풀려나서 평양에 있는 왕을 알현하고 의주까지 호위했다. 1593년 12월 관찰사로 부임하던 강화에서 58세의 나이로 죽었다. 문집으로 《송강집》7책과 《송강가사》1책이 전한다. 강직하고 청렴하나 융통성이 적고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성품 탓에 동서 당쟁의 와중에 동인으로부터 간신이라는 평까지 들었다. 정치가로서의 삶을 사는 동안 예술가로서의 재질을 발휘하여 국문시가를 많이 남겼다. <사미인곡>․<속미인곡>․<관동별곡>․<성산별곡> 및 시조 100여 수는 국문시가의 질적․양적 발달에 크게 기여했으며, 특히 가사작품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린 걸작이라는 평을 받는다.

3. 작품의 구성

제1수 - 부의모자(父義母慈) : 부생모육의 은혜

제2수 - 군신 (君臣) : 임금과 백성의 관계와 부모님의 배려

제3수 - 형우제공(兄友弟恭) :형제간의 반목을 금하고, 우애 있게 지내기를 권함

제4수 - 자효(子孝) : 부모님에 대한 효도 권유

제5수 - 부부유은(夫婦有恩) : 부부는 일심동체, 상호간의 존경

제6수 - 남녀유별(男女有別) : 남녀관계가 문란해짐을 경계

제7수 - 자제유학(子弟有學) : 자녀들에게 학문 권장

제8수 - 향려유례(鄕閭有禮) : 올바른 행동 권유

제9수 - 장유유서(長幼有序) : 어른 공경하는 태도

제10수 -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의 관계

제11수 - 빈궁우환(貧窮憂患) 친척상구(親戚相救) : 상부상조의 정신

제12수 - 혼인사상인리상조(婚姻死喪隣里相助) : 애경사시에 서로 도울 것

제13수 - 무타농상(無惰農桑) : 농사일에 상부상조의 정신

제14수 - 무작도적(無作盜賊) : 남의 물건을 탐내지 말 것

제15수 - 무학도박(無學賭博). 무호쟁송(無好爭訟) : 도박과 송사를 금함

제16수 - 반백자불부대(班白者不負戴) : 노인에 대한 공경의 마음

4. 감상

정철은 국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서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유려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수없이 남겼다. 그런 그가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백성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교화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지은 작품이 바로 훈민가이다. 그의 작품은 그 이전의 다른 사대부들이 쓴 훈민가와는 달리 작품의 대상인 백성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고려해서 지었다. 그런 점에서 백성을 생각하는 정철의 섬세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의 생애를 보았을 때 높은 관직에 오른 적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관찰사로서 부임한 경력이 크다. 관찰사는 전국 8도에 각각 임명되는 직책으로서 중요한 정사에 대해서는 중앙의 명령에 따라 행하였지만 관할하고 있는 도에 대해서 도의 장관으로서 지방행정상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관찰사로서 보낸 많은 시간이 그에게 애민의식을 심어주었기에 교훈을 목적으로 하는 목적문학인 훈민가가 많은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읽히는 가치 있는 작품이 되게 한 것 같다.

출처

정철, 송강가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박노준, 고전시가 엮어 읽기 (하), 태학사

전영진, 송강가사 다산시선, 홍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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