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다산은 1818년 유배에서 풀렸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을 연마하며 말년을 보낸다. 61세 때에는 회갑을 맞아 다산 자신이 직접〈자찬묘지명 自撰墓誌銘〉을 지어 자서전적 기록으로 정리했다.
〈자찬묘지명〉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문집에 넣기 위한 <집중본>이고, 다른 하나는 무덤 속에 넣기 위한 <광중본>이다.
여기서는 다산 정약용의 자찬묘지명(집중본)의 원문과 국역(박석무 역)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