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루(黃鶴樓)
양자강에 걸린 장강대교를 건너서 있는 黃鶴樓는 웨양의 岳陽樓, 남창의 藤王閣과 더불어 중국 강남의 3대 명루로 우한의 상징이기도 하다.
황학루는 삼국시대에 지은 3층 건물이었으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퇴락하여 증개축을 거듭한 것으로 지금의 황학루는 1985년에 재건한 철근 콘크리트의 5층 건물로 높이가 51m나 되며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최신식 누각이다.
오나라 때 신씨라는 사람이 경치 좋은 이곳에 주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노인이 찾아와 술을 청하기에 내다주었더니 여러 잔을 마시고도 돈을 내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 그 후에도 노인은 돈도 내지 않고 술만 마셨고, 그래도 후덕한 주모는 노인을 잘 대접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은 귤껍질로 벽에다 학을 그려놓고는‘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면 학이 춤을 출 것’이라고 하면서 그동안의 술값이라고 하고는 길을 떠났다.
그 후로 사람들이 모이는 술자리마다 노래를 부르면 벽에 그려진 학이 나와 춤을 추었고 이러한 소문이 나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술을 마시는 바람에 주인은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10년 후에 다시 나타난 노인은 술대접을 하려하자 필요 없다면서 자기가 그렸던 황학을 타고 피리를 불면서 하늘로 올라가버렸는데 그 노인은 자안(子安)이라는 신선이었다고 전한다.
그러자 큰 돈을 번 신씨는 그 신선을 기려서 그 자리에다 정자를 짓고 황학루라 이름 했다고 하는 것이 황학루의 전설이다.
기록에 의하면 황학루는 삼국시대 오나라의 손권이 유비와의 싸움에 대비해서 223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고사와 풍광 좋은 경치가 어우러진 황학루는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모여 시문을 지었는데 그 중에서 최호(崔顥)의 시 黃鶴樓가 자장 수작이라 한다.
<최호시 황학루>
昔人已乘黃鶴去 옛 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가고
此地空餘黃鶴樓 땅에는 쓸쓸히 황학루만 남았구나.
黃鶴一去不復返 한번 간 황학은 다시 오지 않고
白雲千載空悠悠 흰 구름 천 년을 유유히 떠 있네.
晴川歷歷漢陽樹 맑은 냇가에는 한양의 나무그늘 무성하고
春草萋萋鸚鵡洲 앵무주 모래톱에는 봄풀들만 우거졌네.
日暮鄕關何處是 해는 저무는데 고향이 어디던가
煙波江上使人愁 강 위의 물안개에 시름만 깊어지네.
훗날 이백이 황학루를 찾아와 최호의 시를 보고 천하의 명시라 격찬하고 이보다 더 좋은 시는 지을 수 없다면서 붓을 꺾었다.
그래서 황학루의 최호 시비 옆에는 이백이 붓을 꺾었다는 각필정(擱筆亭)이 남아있다.
그러나 그는 유명한 황학루에 시 한수를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지 다음에 다시 찾아와서‘앵무주(鸚鵡洲)’라는 시를 읊고 붓을 씻었다는 세필지(洗篳池)가 지금도 남아있다.
세필지
<이백시 앵무주>
鸚鵡來過吳江水 앵무새가 오강에 날아와
江上洲傳鸚鵡名 강 모래섬이 앵무주라는 이름을 전하게 되었다네.
鸚鵡西飛隴山去 앵무새는 서쪽으로 날아 농산으로 가버렸는데
芳洲之樹何靑靑 향기로운 모래섬의 나무는 어찌 그리 푸르른고.
煙開蘭葉香風暖 안개 걷힌 난초 잎에 향기로운 바람 따뜻하고
岸夾桃花錦浪生 강 언덕 복숭아꽃에 비단물결 일렁인다.
遷客此時徒極目 폄천된 나그네 부질없이 먼 곳만 바라보는데
長洲孤月向誰明 긴 섬 외로운 달은 누구를 향하여 비추는가.
황학루
황확루 안의 벽화
황학루 귀학
'한문학 > 중국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춘야연 도리원서 (0) | 2013.08.11 |
---|---|
삼국지의 적벽대전 (무적벽)과 제갈량 출사표 (0) | 2007.12.30 |
소동파 적벽부(문적벽) (0) | 2007.12.30 |
악양루의 악양루기와 동정호 (0) | 2007.12.29 |
등왕각 (0) | 2007.12.28 |